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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4 해외영화
3분이 채 되지 않는 찰나의 반복
3분이 채 되지 않는 찰나의 반복, 어쩌면 어수룩한 러브스토리 #트랩트(Trapped)무겁게 짐을 든 여자를 툭 치고 지나간 남자, 어느 문 앞에서 '덫'에 걸린 듯 빠져나오지 못하고 맴돈다. 앞으로 걸어도, 뒤로 걸어도, 뛰어도, 방향을 바꿔도, 짜증 내봐도 벗어날 수 없는 시공간에서 한 여자를 만나 잠시 빠져나온 남자, 다시금 그 시공간의 덫에 빠져버린다.3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대사 하나 없이 진행되는 이 단편은 오묘하다.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혼자만의 시공간에서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사라진지 오래.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르는 제자리걸음을 계속하는 주인공을 보며 이상하게도 프레임 바깥의 우리들이 더 다급해진다. 실상 러닝타임으로 따지자면 주인공의 제자리걸음은 약 1분 30초로 짧은데 그보다 오래 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대사 없이 배경 음악과 주인공의 표정, 행동으로 보여지는 까닭에 마치 지켜보는 이들이 '덫'에 걸린 것처럼 몰입했기 때문일 터. 지쳐버린 주인공 앞에 여인이 나타나 손을 내미는 순간, 지켜보는 이들은 모두 함께 설레게 된다. 드디어 남자가 빠져나갈 때인가 하고.그런데 잠깐, 이 여자... 다름 아닌 남자가 '덫'에 빠지기 직전 무심히 치고 지나간 그 여자다.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고 일어나 쇼핑백을 들어주며 공간을 빠져나가는데, 무사히 벗어난 줄 알았던 남자가 다시 '똑같은 시공간의 덫'에 빠지는 걸로 영화는 끝난다.'끝없이 반복되는 덫'과 남녀로 짧게 풀어낸 이 단편은 상상의 여지가 많아 다 보고서도 몇 번을 반복해서 보게 될 만큼 여운이 길게 남았다. 상상에 따라 여러 스토리로 펼쳐볼 수 있을 듯한데 필자의 경우 이 이야기야말로 어수룩한 러브스토리의 비유라고 생각했다.언제 어떤 순간에 찾아올지 모르는 사랑은 오해에서 시작되기도, 원수를 엮어주기도, 첫눈에 반하기도 하는 등 모양새가 다 다르지만 본질 만은 똑같다. 서로 다른 이들이 '처음'으로 함께하는 만큼 어수룩하고 어설픈 점 투성이라는 사실. 서로의 템포와 온도를 맞춰가는 나날은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덫' 속을 맴도는 것만큼 갑갑해 금방 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지만, '덫'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는 찰나의 순간 만은 지독하게도 달콤하니 어쩌면 '어수룩한 사랑의 덫' 속으로 우리는 스스로 날아 들어와 걸리는 건 아닐까.영화의 말미, 여자를 따라 '덫'을 빠져나갔던 남자가 잠시 후 다시 '덫'에 빠진 걸 알고 허탈해 쇼핑백을 놓쳐버리지만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남아 있다. 처음과 달리 여자의 쇼핑백들은 들고 다시 '덫'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 앞서의 반복이 아니라 여자가 남긴 '사랑의 잔여' 또는 '깨달음'을 갖고서 갇히게 되었으니 다음에 빠져나가게 되면 좀 더 오랫동안 '덫'과 작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여인과 다시 재회하든, 다른 여인을 만나 사랑하든 어수룩한 러브 스토리도 한 뼘은 성장하기 마련이니까.-트랩트(Trapped) 속에서 여러분은 또 어떤 이야기를 찾게 될까요. 러닝타임이 3분이 채 되지 않아 가볍게 재생 버튼을 눌렀다가 긴 여운에 취해 깊고 넓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될 겁니다. 그 매혹적인 순간이 흘러가고 나면 리뷰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공유해주세요. 궁금합니다 :)리뷰 : florence 박정현 gukja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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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4 국내영화
벼랑 끝에 선 소년과 소녀의 비명 <자전거 도둑>
벼랑 끝에 선 소년과 소녀의 비명1. 제목이 주는 묵직한 오마주와 우리 시대의 현실여러분은 '자전거 도둑'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 많은 분이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걸작을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2020년, 송현우 감독이 그려낸 **<자전거 도둑>**은 그보다 훨씬 더 시리고 아픈 지금 우리 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22분 22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영화는 우리 사회가 가장 외면하고 싶어 하는 곳, 즉 '보호받지 못하는 청춘'의 심장부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자전거를 훔치는 비행 청소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했던 두 아이의 처절한 기록이자, 사랑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비정한 현실에 대한 고발이기도 합니다.2. 사랑이 짐이 되어버린 소년과 소녀의 초상영화의 주인공은 고등학교 1학년인 기태와 수린입니다. 열일곱,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학교에서 미래를 꿈꾸고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죠. 하지만 이들에게 세상은 그리 다정하지 않습니다. 기태는 보육원에서 자라 이제는 시설을 떠나 홀로 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가는 고아이고, 수린은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핸드폰 가게 앞에서 나레이터 모델로 일하며 하루를 버텨냅니다. 기태와 수린은 서로에게 유일한 안식처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환영해주지 않는 자신들을 온전히 받아주는 단 한 사람. 하지만 이들의 깊은 사랑은 예기치 못한 시련을 맞이합니다. 바로 수린의 임신입니다. 새로운 생명의 잉태는 축복이어야 마땅하지만, 당장 오늘 밤 잘 곳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이들에게 임신은 감당할 수 없는 공포이자 재앙으로 다가옵니다.수린의 임신 중절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기태는 인생을 건 결단을 내립니다. 동네에서 가장 비싼 최고급 자전거를 훔치기로 한 것이죠. 기태에게 그 자전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수린을 지키고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기태에게 마지막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습니다. 믿었던 중개상의 배신으로 기태는 경찰의 손에 넘겨지고,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하며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사랑을 지키려 했던 행위가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떨어지게 만드는 비극의 씨앗이 된 것이죠.3. 사랑'이라는 낭만이 '생존'이라는 비극으로 치환되는 과정송현우 감독은 기획 의도에서 "사랑조차 가혹한 현실 앞에서는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가"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의도는 수린의 “임신“이라는 사건을 통해 아주 잔인하게 스토리와 연결됩니다. 보통의 영화에서 연인의 임신은 갈등의 시작이자 극복의 대상이지만, 기태와 수린에게 이것은 '극복'할 수 없는 경제적 파멸을 의미합니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전거를 훔쳐야 하는 기태의 상황은, 감독이 말한 '생존과 맞닿은 사랑'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아이러니하게도 범죄라는 '막다른 골목'인 것이죠. 여기서 사랑은 더 이상 미래를 꿈꾸는 낭만이 아니라, 당장 오늘을 수습하기 위해 범죄라도 저질러야 하는 무거운 부채가 됩니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아주 불편하지만 꼭 마주해야 할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은 구원인가, 아니면 또 다른 시련인가?" 감독은 보육원에서 퇴소한 아이들과 해체된 가정 속에서 방치된 아이들의 삶을 오랫동안 응시해 왔습니다. 감독이 자전거를 훔치는 설정을 가져온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것은 청소년의 일탈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아이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최후의 생존 방식'을 상징합니다. 기태에게 자전거 도둑질은 범죄이기 이전에 수린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연출적으로 감독은 화려한 기교를 걷어냈습니다. 대신 인물의 숨소리 하나, 흔들리는 눈빛 하나를 아주 가까이서 포착합니다. 낡고 눅눅한 공간에 흐르는 차가운 공기까지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했죠. 이를 통해 관객이 기태와 수린의 떨림을 곁에서 느끼며,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함께 체험하게 만듭니다. 결국 이 영화는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생존으로서의 사랑'을 말하며, 그 힘조차 때로는 가장 잔인한 시련이 될 수 있다는 모순을 가슴 아프게 그려내고 있습니다.4. 현장 경험이 빚어낸 '공간의 공기'와 '숨소리'감독의 연출 의도 중 "낡은 공간 속에 스며든 공기를 담아내고 싶다"는 대목은 그의 미술팀(ART DIRECTION) 경력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최근 대세 배우로 자리 잡은 탕준상 배우와 김승비 배우의 열연이 돋보입니다. 감독은 신인답지 않은 통찰력으로 배우들의 잠재력을 끌어냈고, 이는 수많은 영화제 본선 진출과 수상이라는 결과로 증명되었습니다. 현장 경험이 빚어낸 '공간의 공기'와 '숨소리'감독의 연출 의도 중 "낡은 공간 속에 스며든 공기를 담아내고 싶다"는 대목은 그의 미술팀(ART DIRECTION) 경력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기태와 수린이 머무는 공간을 단순히 배경으로 소비하지 않게 합니다. 눅눅한 보육원 근처의 골목, 술 냄새가 진동할 것 같은 수린의 집, 차가운 핸드폰 매장 앞 거리 등은 그 자체로 주인공들을 압박하는 '사회적 벽'으로 작용합니다. 화려한 장치 대신 인물의 눈빛과 숨소리에 집중하겠다는 감독의 선언은, 이 척박한 공간 속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아이들의 생존 본능을 관객에게 전이시킵니다. 관객은 탕준상 배우의 떨리는 호흡을 통해, 감독이 의도한 '삶의 무게'를 청각적으로도 체험하게 되는 것이죠.5. 배신당한 신뢰: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감독은 이 영화가 '생존 이야기'라고 강조합니다. 스토리에서 가장 뼈아픈 지점은 기태가 경찰에 잡히는 이유가 자신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중개상의 배신' 때문이라는 점입니다.이는 기획 의도에서 말한 '우리가 쉽게 외면하는 현실'과 연결됩니다.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돕는 어른(안전망)은 없고, 오히려 그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고 버리는 비정한 어른들만 가득한 세상을 은유합니다. 기태가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하면서 수린은 홀로 남겨지게 되는데, 이는 사랑이 시련의 시작이 된다는 감독의 모순된 감정을 가장 비극적으로 완성하는 대목입니다.영화를 보고 나면 '자전거 도둑' 기태를 비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가 훔치려 했던 것이 자전거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에 대한 권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탕준상 배우의 맑은 눈망울이 절망으로 물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관객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태'와 '수린'을 외면해 왔는지 자책하게 됩니다.송현우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손을 내밉니다.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오히려 우리가 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들의 사랑이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도록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고 말이죠. <자전거 도둑>은 22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관객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아주 뜨겁고도 서늘한 수작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슬픈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온도를 1도쯤 높여야 한다는 사명감을 주는 작품입니다. 송현우 감독이 앞으로 그려낼 더 넓은 세계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6. 멈춰 선 자전거 뒤에 남겨진, 우리들의 일그러진 동화영화 <자전거 도둑>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암전이 찾아올 때, 우리는 단순히 '범죄를 저지른 소년의 불운'을 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쳐놓은 촘촘한 그물망 아래로 추락하는 한 가냘픈 생존의 몸부림을 목격하게 됩니다. 22분 22초라는 시간은 기태와 수린에게는 영원과도 같은 고통의 무게였을 것이며, 관객에게는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무감각하게 타인의 절망을 지나쳐왔는지 자문하게 만드는 뼈아픈 성찰의 시간입니다.이제 우리는 영화 밖의 세상에서 수많은 '기태'와 '수린'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그들을 비행 청소년이라는 차가운 시선으로 재단할지, 아니면 그들이 훔쳐야만 했던 것이 사실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었음을 이해하고 손을 내밀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으로 남았습니다.현장의 땀방울과 인물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이 아픈 이야기를 완성해낸 송현우 감독의 시선은, 그래서 더욱 소중합니다. 이 영화가 건네는 서늘한 경고와 뜨거운 위로가 리포트를 읽는 여러분의 가슴 속에도 작은 파동을 일으키길 바랍니다. 기태의 자전거는 멈췄지만, 이 영화가 던진 질문은 이제 우리 안에서 비로소 페달을 밟기 시작할 것입니다.영화 감독 작가 하얀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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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2 국내영화
“살아보니 알겠더라.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의 인생의 길이 있다....”
“살아보니 알겠더라.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의 인생의 길이 있다....”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태어나면서 버려지는 아이도 있지만,어쨌든 가족의 일원으로 세상에 나온다.가족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무수히 많다.왜 그럴까?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갈등에서 비롯되고,가족 또한 갈등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종 일어나는 까닭이다.누구나 행복을 꿈꾸며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자식을 낳아 더 행복하길 원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그리 녹록치 않다.가족 바깥에 존재하는 가혹한 경쟁 사회는 언제부턴가 가족을 금 수저와 흙 수저로 낙인을 찍어가며 자조와 원망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이런 척도로 볼 때<담>에 등장하는 대학생 아름이는 금 수저 쪽에 가까운 인물이다.그녀는 커리어 우먼인 어머니 덕에 대학까지 가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일본으로 편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그런데 어머니 눈으로 볼 때 딸은 아직 어리고 약하다.그래서 세상 공부를 하라면서 식당 알바를 강제적으로 시킨다.하지만 딸 아람은 일이 서툴러서 오래 붙어있지 못한다.아람은 점점 주눅이 들어서 앞으로 알바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엄마는 딸의 편입에 필요한 잔고증명을 해주지 않겠다고 대응한다.궁지에 몰린 아람은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려 한다.그런데 그곳에서 할머니가 기력이 쇠해서 쓰러진다.아람의 엄마가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다.아람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하는 이야기를 엿듣는다.그제서야 아람은 자신이 철이 없었음을 깨닫는다.그리고 영화의 제목<담>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사람들 사이를 가로 막는 장애물로서의 담이 아닌,다른 차원의‘담’으로.<담>은 평범한 가족 이야기다.그러나 누군가에게 평범해 보여도 당사자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아람의 가족에게는 아버지가 부재 한다.삼대로 넓히면 할아버지(남성)의 존재도 없다.할머니-어머니-딸로 이어지는,그야말로 여성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는 영화다.상대적으로 부당하고 비합리적이고 성차별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 속에서 여성이 당당하게 독립적인 존재로 살기란 더욱 어렵다. <담>은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이러한 불평등한 세상을 가족 성원들 자신과 관계의 결핍을 통해 역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또한<담>은 평범한 성장영화이기도 하다.세상 물정 모르는 아람은 아직 성장하고 있다.아니,더 성장해야 한다.어머니는 그런 딸을 걱정한다.그런데 할머니의 눈으로 보면 딸(아람의 어머니)또한 아직 부족하다. <담>의 감독은 담담한 어조로 현대 사회 속에서 여성으로 이뤄진 가족의 세계를 통해 가족 내부와 바깥의 부조리와 모순을‘조용히’드러내고 있다.단편은 장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길이의 영화다.경험적으로 외국의 단편들과 비교해 보면 한국의 단편들은 상대적으로 길이가 다소 길다.그만큼 이야기가 더 복잡하고 인물도 더 등장한다.소재 또한 사회 비판물이 많고 그만큼 주제도 무거워진다.단편이라고 꼭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개인적으로는 단편이라는 제한적 시간을 잘 활용해서 완성한 작품이 좀 더 우월한 미학적인 성취감을 주는 것 같다.현대 작곡가 중에 안톤 베베른(오스트리아. 1883~1945)이라는 작곡가가 있었다.현대음악의 우산이라고 할 수 있는 쇤베르크의 제자다.베베른은 쇤베르크가 창안한 무조음악과12음열기법을 더 밀고 나갔다.대중음악에 귀가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 들으면 너무 난해한 음악이다.그러나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바흐나 모차르트 음악에서 찾을 수 없는 현대성을 보게 된다.아무튼,그래서 그랬는지 베베른은 애초부터 자신의 음악이 대중에게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대부분의 음악을 짧게 만들었다.그가 작곡한 작품들은 전부 해봐야CD세 장 못 채우는 분량이다.그러나 그 짧은 작품들이 끼친 영향은 현대 음악사에 있어서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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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2 해외영화
<알고도 모르는 감정> 섬세한 위로
섬세한 위로 그리고 묘하게 끌려가는 공감<알고도 모르는 감정>은 특정한 타깃이나 취향에 두지 않고 전 세대를 공감하는우리가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겪어 본 삶을 반영하여 우리에게 과거,현재,미래를 생각하게 만든다.일가족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었기 때문에,우리가 과거를 추억하고,현재래 성찰하고,미래를 그려보는 평범한 일상에 잠들어 있던 우리의 기억을 흔들어 깨운다.정새벽은 평범한 가정의 아이이다,어느 날 어머니가 불치병에 걸리게 되어 온 가족은 변화를 맞이한다.어린 새별의 세상은 어느 순간부터 아픈 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평범하게 살아온 새별은 처음으로 온 세상의 관심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처음으로 타인으로부터 갑작스러운 관심과 마음에 없는 말을,그저 이야깃거리가 필요해서 하는 말들을 듣게 된다.그러던 중 엄마가 암 방사능 치료 때문에 머릴 깎아 빡빡머리가 된 것에 아이들과 싸우고,엄마에게 생일에는 빡빡머리로 나오지 말라고 한다.새별의 생일날,친구들이 오고,가발을 쓴 엄마는 정성스럽게 떡볶이와 불고기를 장만해 아이들에게 주고,새별은 친한 친구 하나가 엄마 때문에 오지 못하는 것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그리고 시간이 지나1년이 지나 엄마는 병세를 더 악화하고,엄마 때문에 저녁에 시켜 먹어야 하는 불편함에 새별은 엄마가 낫지 못하고 죽었으면 하고 기도를 드린다..인도네시아 출신의 클라우디아 감독은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처음으로 사람들이 내가 불행하고 말을 할 때, ‘나는 진짜로 불행한 사람인가?’하고 새별은 생각하게 되고,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면,자신을 불행한 아이라고 생각하는 타인의 시선을 느껴야 하는 정새별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담담하게 보고 있다.우리는 모두 다‘처음’을 겪는다.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본다는 것,이전에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흥미로운 일이다.처음이라는 단어.첫 생일,첫눈,첫 입학 처음에 느끼는 설렘도 많지만,첫 싸움,첫 눈물,첫 이별,처음에 느끼는 불행도 있다.사회는 우리를 그들의 시선 속에 가둔다.처음이라는 것은 늘 쉽지가 않다.우리는 인생에서 새로운 것을 맞았을 때,새로운 감정,새로운 경험을 체험한다.처음을 경험할 때의 내가 결정하는 선택이 나에게 좋은 결정이 될 수 있고,후회할 선택 될 수도 있다.어머니가 어머니로서의 삶이 처음이듯이,아이도 아이의 삶이 처음이다.어린 새별은 인생에서 새로운 어려움을 미지했을 때 관연 어떤 감정과 생각을가지는가?영화는 담담하게 새별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마치 세상은 새별의 소원대로 가는 거 같다.엄마가 낫지 못하면 죽여주세요.하는 새별의 소원 역시 이루어지고,라면을 먹다 엄마의 죽음을 들은 새별은 자기 탓이랑 마냥 울음을 터뜨린다.하지만 이내 라면을 먹는 일상적인 상황을 보여준다.처음은 경험이 후회일 수도 있지만,이미 엎질러지는진 물은 돌이킬 수 없다.다시 그 경험을 하지 않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을 보는 감독의 눈처럼 말하고 있다.대단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은 없지만,인물들의 감정에 조용히 스며들어 나도 저 새별의 맘을 이해할 거 같은 느낌을 시종일관 받게 된다.한 해를 마무리 짓는 연말이다.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다면,어린 시절의 내 맘 같은 주인공 새별의 맘을 이해하고 싶다면,묘하게 끌려 찾아보게 되는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하얀그림자 영화작가감독 정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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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2 해외영화
소녀와 총
소녀와 총영화에서 나오는 총은 여러 가지 활용된다.정말 총 한 대 맞으면 그냥 죽는 건가 싶기도 하고,총으로 나쁜 놈들 처지 하는 정의의 물건이기도 하고,총이라는 게,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보편화되지 않아 불법한 소품처럼 느껴지더라도 가끔 미국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는 걸 보면 무서워지지도,총기 소지가 자유롭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다행일지 모릅니다.그런 누군가가 총을 가진다면 어떤 일을 벌일까?하는 상상에서 이 영화는 출발합니다. 친구와 낱말 잇기를 이어가던 소녀는 우연히 거리에서 권총을 발견하게 된다.소녀는 인터넷을 통해서 가져온 탄창을 빼고,총알을 넣는 총의 사용법에 숙달해 간다.그리고 멋지게 영화 속에 나오는 다양한 장면을 따라가며 무게를 잡는다.그리고 고민을 한다.이 총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게에 가서 강도의 흉내도 내보고,지나가는 건달을 보고만 소녀는 뭔지 모르게 총을 꺼내지 못한다.뉴욕에 기반을 둔 감독은 음악에서 시각적 스토리 텔링에 대한 열정을 가진 창의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빈 총으로 이리저리 연습도 해보고,다양한 포즈를 취하는데,평온함이 오지 않는다.결국,소녀는 자신의 평온함을 위해 총알을 넌 총으로 빵!하늘에 대고 쏘며 미소를 짓는 장면 안정과 평화를 느낀다.카세트에서 나오는 소리는 소녀에게 행동을 알려주는 나침판 같은 존재이다.소녀는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기,힘을 사용함에 대한 압박감,불안감에 대한 감정은 해방을 위해 가감하게 자기가 어울리지 않는 힘,용기를 버려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총을 가지고 다룬 이야기는 많지만,이 영화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보통 코미디나 희극 적인,아이러니로 푸는 경우가 많지만,힘이나 용기를 표현하기보다는 소녀의 잔잔한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영화는 상당히 카세트에서 나오는 소리가 마치 소녀의 성장을 부추긴다.총을 사용하고자 하는 소녀는 아직 미 성숙한 이들이 가지지 말아야 할 자유와 방종을 의미하기도 한다.총은 소녀에게는 자유일 수도 용기일 수도 권력일 수도 있다.권력을 사용,용기의 사용,자유의 대가에는 반드시 책임감 따른다는 것에 소녀는 쉽게 얻은 자유를 사용 못 한다.영화는 일반적인 해석으로는 난해하고 어려운 주제를 영화 속에 내포하고 있다.영화는 소녀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이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캐릭터,우리도 언제든지 이 영화의 특별하고 색다른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총은 누구에게는 권력이고,힘이고,용기이고,자유이다,얼마든지 대비해서 생각해서 영화에 집중하면 난해하고,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퍼즐을 맞추는, 15분이라는 영화의 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은 쾌감을 느끼게 된다.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하며,그 의미를 스스로 깨달으며 보는 이 영화를 정주행하시며 느껴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하얀 그림자 영화작가감독 정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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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2 해외영화
불안과 무의식, 유키코, Yukiko
불안과 무의식, 유키코, Yukiko인간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어떤 심리 상태일까?.아마도 극심한 공포에 휩싸이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한다.인생을 하나의 일직선으로 생각하여 현재의 순간은 돌이킬 수 없는 오직 한번 뿐인 유한된 시간이라고 본다.이에 따라 죽음이란 과거,현재,미래가 이루는 일직선의 마지막이며 절대적 허무인 동시에 모든 것을 잃게 되면 모든 것이 정지되는 순간으로 본다.동양에서는 인생을 윤회 적인 것으로 해석하므로 죽음에 대해서는 서양 철학보다 쉽게 받아들이고 빠르게 적응하는 경향이다.서양 철학이 인생을 일직선으로 묘사한 것과는 다르게 동양 철학에서는 인생을 둥그런 원으로 묘사하고 있다.이는 죽음으로 인해 인생이 끝났다 하더라도 무언가 새로운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이 영화는 동양적인 윤회의 시상보다는 서양의 절대적 허무에 관한 이야기다,영화는 어둡고,고요한 밤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일본 여성 요시코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그녀의 눈은 불안감과 초조함에 어찌할 줄 모르고 있다.그리고 한 차가 도착하며 남자가 내린다.요시코는 그 남자를 향해 다가가고,남자는 뒤로 다가오는 요시코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의 그의 심장에 칼이 깊이 박힌다.남자는 요시코의 목을 잡으며 고통스러워한다,남자는 여자를 피해 달아난다.피 묻은 칼을 들고 쫓아오는 요시코와 비교적 화면은 그 남자의 과거 의사로 강단에 섰던 장면들이 교차 적으로 흘러가며 긴장감을 더해간다.남자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성적인 약물 복용하고 탐욕 적인 욕망을 마음껏 취한다,도망치며 내뱉는 거친 숨소리는 과거의 차를 운전하는 장면에도 사운드를 오버로 들리며 긴장감을 더한다.결국,남자는 운전하다 실수로 교통사고 요시코와 요시코의 아이인 아끼꼬를 차를 치고는 도망친다.여전히 요시코는 도망치는 남자를 따라 쫓아간다.남자의 과거의 모습은 차를 치고 도망친 이후의 답답하고 숨이 막힌 고통스러운 장면으로 이어진다.몸을 가누고 겨우 수술실에 도착한 남자는 이상한 환영에 시달리고,그러다 자신이 교통사고로 친 아키코가 수술대에 누워 있음을 알고는 놀란다.그와 동시에 요시코의 칼날이 남자의 가슴에 깊게 박히고 남자는 피하려다 요시코를 죽이게 된다.자신이 교통사고 친 아이를 수술한 남자는 고통과 두려움에 빠진다.칼에 찔린 남자는 몸을 가누며 움직이고,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그의 죄의 흔적처럼 붉은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있다.자신의 실수 한 모녀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그의 박힌 칼날은 그의 붉은 심장에 충격을 가하고,남자는 바닥에 쓰러지고,요시코는 떠난다.죽은 남자의 눈에 비친 원망 섞인 요시코의 눈빛을 쳐다본다.영화는 마스크를 쓴 여성에 의해 심각한 상처를 입은 한 남자가 자신이 남은 마지막 몇 분 동안 의식 속으로,주마등처럼 교차 편집으로 흘러간다.현재와??과거,상상력이 합쳐진 상황에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감독은1999년부터 텔레비전과 영화에서 전문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만큼 아주 독창성과 색감의 강렬함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이 영화는 기본적 스릴러 공포 장르 영화의 많은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사실적인 영화이기도 하다.감독은 장르의 규칙을 따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장르의 다른 규칙을 통합하고자 했다.고전적인 복수 영화 그 이상이고 스토리를 그래픽으로 전달하는 강렬한 감성 가득한 영화이며,고전 영화와 장르 영화의 경계를 허물고 색감과 색채 감각에 통하여 지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퓨전 시네마인 이 영화 정주행으로 감상하시길 바랍니다.하얀 그림자 영화작가감독 정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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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1 국내영화
낯선 언어로 써 내려간 가장 익숙한 사랑 <그랜파>
영화 <그랜파(GRANDPA)>는 세대 간의 단절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영어 생일카드'라는 일상적인 소재와 '할아버지의 귀여운 분투기'라는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최용석 감독의 연출 의도를 중심에 두고, 소통의 본질을 꿰뚫는다.영화는 홀로 바둑을 두는 노년의 윤식을 비추며 시작합니다. 바둑은 정적인 고립의 상징입니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가족과 손자 승민의 존재는 삶의 활력소이지만, 동시에 거대한 '장벽'을 마주하게 합니다. 손자가 건넨 영어 생일카드는 단순히 외국어로 쓰인 종이가 아니라,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채 소외된 어르신들이 마주한 '현대적 문맹의 실체를 상징합니다. 감독은 이 당혹스러운 순간을 출발점으로 삼아 세대 간의 거리를 정면으로 응시합니다.1) ‘영어 카드’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벽영화 속에서 손자 승민이가 건넨 영어 생일 카드는 단순한 축하의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노년층이 마주한 '신(新) 문맹 현상을 상징하는 서글픈 경계선입니다.늘 혼자 바둑을 두던 윤식에게 한글은 익숙한 질서이지만, 영어는 도무지 해독할 수 없는 젊은 세대의 코드입니다. 감독은 이 카드를 통해 어르신들이 느끼는 사회적 소외감을 시각화합니다. 손자가 내민 사랑의 표현조차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은, 오늘날 디지털 기기나 외래어 범람 속에서 '외국'이 아닌 '자기 집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 우리 시대 노인들의 자화상을 투영하고 있습니다.최용석 감독은 연출 의도를 통해 어른들 역시 아이의 것들을 배우며 공감대를 형성하려 노력해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극 중 윤식이 영어 답장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은 단순히 약속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넘어, 젊은 세대의 세계로 편입하고자 하는 노년의 절박하고도 아름다운 '노력'입니다.2) 가장 먼 존재를 통해 좁혀지는 가장 가까운 거리이 영화의 가장 백미는 윤식이 답장을 쓰기 위해 도움을 받는 대상이 친구나 가족이 아닌, '화장실에서 만난 흑인 외국인'이라는 설정에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층위의 아이러니한 감동이 숨어 있습니다. 또한 공간의 상징성을 암시하는 '화장실'은 사회적 체면이나 권위가 해체되는 지극히 사적이고 평등한 공간입니다. 윤식은 이곳에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도움을 요청합니다.이는 문화적, 인종적으로 가장 거리가 먼 '외국인'이, 할아버지와 손자라는 '가장 가까운 혈연' 사이의 다리를 놓아줍니다. 이는 소통의 본질이 언어의 유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고 싶어 하는 마음'과 '배우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낯선 이의 손을 빌려 완성된 서툰 영어 문장은, 오히려 그 어떤 유창한 번역보다 진한 울림을 줍니다.자신의 문화(바둑, 한글)가 소중한 만큼 타자의 문화(영어, 젊은 세대의 감성)를 수용하려는 윤식의 자세는, 기성세대가 가질 수 있는 권위를 내려놓는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친구에게 도움을 구하다 실패하고, 결국 화장실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낮은 공간에서 만난 '흑인 외국인'에게 도움을 받는 설정은 의미심장합니다. 이는 소통이란 혈연이나 국적, 인종의 경계를 넘어 '이해하고자 하는 순수한 의지'가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3) 권위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배우는 어른’의 긍정최용석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노년의 삶이 가져야 할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경험에 안주하는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변화하는 세상을 향해 기꺼이 ‘배우는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윤식은 "할아버지가 그것도 모르냐?"라는 자격지심에 빠지는 대신, 손자와 연결되기 위해 낯선 언어에 도전하는 '학생'이 되기를 자처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이 단순히 나이 차이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배척하는 태도에서 비롯됨을 역설합니다. 아동이 어른의 세계를 배우며 자라듯, 어른 역시 젊은 세대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비로소 '자랑스러운 할아버지'로 거듭날 수 있다는 감독의 시선은 매우 따뜻하고도 희망적입니다. 윤식이 외국인의 도움을 받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는 영어 문장은 유창함의 척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손자의 언어로 말을 걸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의 번역'입니다.감독은 우리 사회에 공공연하게 나타나는 '문화적 배척'과 '이해 부족'의 해법으로 '학습하는 어른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아이가 어른의 세계를 배우며 성장하듯, 어른 또한 아이의 세계를 배우며 정서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통찰은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입니다. 화장실에서의 만남이 주는 해학적인 분위기 뒤에는, 소통을 위해서라면 체면을 가리지 않는 할아버지의 진심 어린 사랑이 깔려 있습니다.4. 소통은 번역’이 아니라 마음의 필기’다영화 <그랜파>는 세대 간의 장벽이 생각보다 높지만, 동시에 생각보다 사소한 계기로 허물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화장실에서 낯선 외국인과 머리를 맞대고 영어 문장을 적어 내려가는 윤식의 모습은, 소통을 위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려는 모든 어르신을 향한 아름다운 노래입니다.결국 윤식이 쓴 답장은 단순한 영어 문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도 너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라는 고백이자, 세대 간의 단절을 끊어내기 위해 노년이 먼저 내미는 용기 있는 악수입니다.영화 <그랜파>는 세대 갈등이라는 거대 담론을 가족 안의 소소한 에피소드로 치환하며 관객의 공감을 끌어냅니다. 윤식의 서툰 영어 답장은 결국 승민에게 전달될 것이고, 그 종이 한 장은 두 사람 사이의 끊어진 소통의 끈을 다시 단단히 묶어줄 것입니다. 이 작품은 새로운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기꺼이 '학생'이 되기를 자처하는 이 세상 모든 할아버지를 향한 응원가입니다.감독은 말합니다. 소통이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상대방의 언어로 말하기 위해 펜을 드는 그 작은 용기에서 시작된다고 말입니다. 손자의 영어 카드가 '절벽'이었다면, 할아버지의 영어 답장은 그 절벽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가 된다. 배움을 멈추지 않는 노년이야말로 진정으로 존경받을 가치가 있음을 영화는 증명한다.5) 이 시대 모든‘자랑스러운 할아버지’를 향한 찬가영화의 마지막, 윤식이 정성껏 적어 내려간 서툰 영어 답장은 유창한 문장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그것은‘ 나는 여전히 너와 대화하고 싶다’라는 사랑의 고백이자, 시대의 소외를 극복하려는 한 인간의 숭고한 노력입니다. <그랜파>는 소통의 부재로 고통받는 우리 사회에 따뜻한 위로와 경종을 울립니다. 진정으로 자랑스러운 어른이란, 높은 곳에서 훈계하는 이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낯선 언어 앞에 펜을 드는 사람임을 이 영화는 증명하고 있습니다.감독은 우리에게 묻습니다."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학생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바둑판 위의 검은 돌과 흰 돌처럼 명확하게 나뉘어 있던 세대 간의 경계는, 이제 할아버지의 서툰 영어 답장 위에서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로 섞여 흐르기 시작합니다. 소통은 번역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려는 마음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되는 것이기에, 윤식에게 영어 카드는 자신을 가로막은 거대한 벽이었지만, 그는 그 벽을 허물기 위해 주저앉는 대신 펜을 들었습니다. 화장실이라는 가장 낮고 은밀한 곳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이방인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그 시간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통의 성소(聖所)’가 됩니다. 인종도, 나이도, 언어도 달랐지만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다’라는 할아버지의 간절함은 그 모든 장벽을 단숨에 녹여버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영화가 도달한 종착지는 '언어의 정답'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입니다.윤식의 서툰 필기체는 유창한 영어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으로 손자의 가슴에 가 닿을 것입니다. 그 글자들 사이에는 "나의 시대는 저물어가지만, 네가 사는 새로운 세상을 기꺼이 배우고 사랑하겠다"라는 할아버지의 눈물겨운 약속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이제 우리는 압니다. 진정한 '그랜파(Grandpa)'란, 높은 의자에 앉아 훈계하는 이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할 줄 아는 사람, 손자가 던진 낯선 언어라는 공을 받아내기 위해 기꺼이 서툰 몸짓으로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영화 <그랜파>는 이 세상 모든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등 뒤에 조용한 응원을 보냅니다. 당신의 서툰 배움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그 배움이야말로 세상을 잇는 가장 단단하고 따뜻한 사랑의 다리라고 말입니다.영화감독 피디 작가 하얀그림자그랜파, GRANDPA (2016)감독 : 최용석 ((Choi, Yongseo)배우 : 정성철 김수복 정희중 장윤하 봉승민 Courage Fidelity 이은진윤식의 생일을 맞아 가족들이 집에 모였다. 승민(손자)이는 윤식(할아버지)에게 자신이 직접 쓴 생일카드를 건낸다. 승민이에게 답장을 꼭 쓰기로 약속한 윤식은 영어로 쓰여진 생일카드를 보고 난감해 한다.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한 윤식은 승민이에게 영어로 쓴 답장을 전달할 수 있을까?영화감상 :https://cinehubkorea.com/bbs/board.php?bo_table=bbs01&wr_id=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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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4 국내영화
도망치기 좋은 날 (2020) 아직 아이들은 어리고 여리다.
씨네허브 플랫폼에서 상영 중인도망치기 좋은 날 단편영화는 포스터의 분위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의 순수함이 묻어나고 경쾌한 배경음악이 함께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 영화를 보고 결코 그런 분위기로만 받아드릴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아이들은 아직 세상이 얼마나 다방면으로 나타나는지, 자신이 얼만큼의 위험까지 노출될 수 있는지를 모른다. 아니 지연이가 신기한 무지개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위험의 수준에 대해 상상할 수도 없다. 그것이 어른과 아이의 차이 중 하나이다.그만큼 아직 아이들은 어리고 여리다.그렇기에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고 가르침이 필요하다. 세상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본분이다.영화 속 엄마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고 까지 생각하고 싶진 않다. 엄마가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아이에 대한 사랑에 의해서라고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아이가 바라는, 또 아이에게 필요한 사랑이 무엇인지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속 엄마는 현실을 알기에 일에 집중했지만 아이의 시선에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뿐더러 사랑의 표현을 얻고 싶어했다. 아이는 어른의 시선을 경험해 보지 못 했기에 아이가 어른의 시선을 이해하기란 보다 어렵다. 그러므로 어른이 아이의 시선으로도 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심각한 내용에 반해 영화가 표면적으로 경쾌한 색깔을 내는 이유는 그만큼 어른들이 아이들의 입장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리뷰https://blog.naver.com/jayoorobge/22351097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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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4 국내영화
영화 <드라이브>가 건네는 씁쓸한 위로
영화의 두 주인공 (이바율 분)과 여자(송재생 분) 는 사회적 안전망 밖으로 밀려난 이들이다.남자: 가족 없이 길 위에서 삶을 일궈온 그는 고립에 익숙한 존재다. 폐지를 줍는 행위는 그에게 생존인 동시에 유일한 사회적 활동이다. 그는 타인에게 무심한 듯 보이지만, 쓰러진 여자를 외면하지 못하는 내면의 온기를 간직하고 있다. 가족을 잃고 길을 헤매다 쓰러진 여자는 급작스러운 상실로 인해 주체성을 잃은 상태다. 그녀는 남자가 내미는 투박한 호의(곰탕)를 통해 서서히 감각을 회복한다. 두 사람의 만남은 '연민'이라기보다 '동질감'에 가깝다. 서로의 과거를 묻지 않고 현재의 배고픔과 추위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가족애'를 보여준다.1) 화려한 도시의 소음 뒤에 숨겨진 '느린 박동’이 영화의 시작은 거창한 서사나 극적인 상상력이 아니다. 시장 귀퉁이에서 마주친, 산발을 한 채 손수레를 끌던 한 남자의 뒷모습이라는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감독은 그 투박한 풍경 속에서 현대인이 외면하고 싶어 하는 본질적인 감정인 **'외로움'과 '상실'**을 포착했다.기획 단계에서 감독이 주목한 것은 '속도'다. 모두가 앞으로 빠르게 달려가는 도시에서, 오토바이에 손수레를 매달고 폐지를 줍는 행위는 가장 느린 이동이다. <드라이브>라는 제목은 역설적으로 이 느린 박동을 가진 이들에게도 그들만의 여정과 목적지가 있음을 시사하며, 소외된 이들의 삶을 '관찰의 대상'이 아닌 '동행의 주체'로 격상시키고자 기획되었다.2) 결핍과 결핍이 만나 '사람'이 되는 과정시놉시스에서 드러나는 서사의 핵심은 '공유'다. 가족 없이 길 위에서 살아온 남자와, 가족을 잃고 길 위에서 쓰러진 여자는 각기 다른 형태의 상실을 겪은 인물들이다. 이들이 만나는 매개체인 '인력거 오토바이'와 '곰탕'은 이 영화의 정서적 중추 역할을 한다.인력거 오토바이는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닌, 두 사람의 삶이 합쳐지는 공동의 공간이다. 폐지를 줍는 고된 노동의 현장은 드라이브라는 행위를 통해 유희와 생존이 결합한 기묘한 연대의 장으로 변모한다.또한 곰탕 한 그릇은 남자가 여자에게 건네는 첫 번째 호의이자, 여자가 남자에게 되돌려주는 신뢰의 상징이다. 뜨거운 국물을 나눠 먹는 행위는 타인의 온기를 거부하던 고립된 자들이 다시 '가족'이라는 관계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순간을 의미한다.인력거 오토바이는 남자의 생계 수단이자 두 사람의 이동 수단이며, 동시에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다. 손수레 위에 실린 폐지는 세상이 버린 쓰레기들이지만, 그 위에 올라탄 두 사람에게는 세상을 유영하는 배와 같다. 함께 폐지를 줍고 움직이는 행위는 두 사람의 삶이 비로소 ‘함께’ 굴러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사 먹이는 곰탕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선다. 뜨거운 국물은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는 매개체다. 여자가 의심을 거두고 남자에게도 국밥을 먹여주는 행위는, 일방적인 구호가 아닌 ‘상호적 유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결정적 장면이다.3) 미화되지 않은 빈곤, 날것 그대로의 다큐멘터리적 고찰이동현 감독의 연출 의도는 명확하다. 관객에게 억지로 눈물을 짜내거나 값싼 감동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는 "조금 우울하고 씁쓸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면 충분하다"라고 말한다. 이는 빈곤과 고독을 심미적으로 포장하지 않겠다는 창작자의 윤리적 선언과도 같다.이를 위해 선택된 것이 '다큐멘터리처럼 거칠고 투박한 어조‘다. 카메라는 인물의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가가는 대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의 일상을 관찰한다. 정교한 조명이나 매끄러운 편집보다는 현장의 거친 질감과 소음, 주인공들의 투박한 손길을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관객이 영화적 환상이 아닌 지독한 현실을 목격하게 만든다. 그 씁쓸함 속에서 피어오르는 아주 미세한 위로야말로 이 영화가 도달하고자 하는 진정한 종착지다.이는 미화된 빈곤(Poverty Porn)을 경계하려는 감독의 윤리적 선택으로 읽힌다. 핸드헬드와 자연광: 신진용 촬영감독은 정제된 미장센보다는 현장감이 살아있는 거친 화면을 선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통의 소음, 오토바이 엔진 소리, 차가운 겨울바람 소리가 영화의 배경음악을 대신하며 극의 사실성을 높인다. <드라이브> 영화는 억지 감동을 쥐어짜지 않는다. 오히려 ‘우울하고 씁쓸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관객은 이들의 행복을 보며 미소 짓기보다, 이들이 처한 현실의 무게를 느끼며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감독이 의도한 ‘약간의 위로’가 가진 힘이다.4) 슬픔을 관통하여 얻는 역설적인 행복감독은 항상 자신을 지배하는 감정인 '외로움'을 영화라는 그릇에 담아냈다. 그러나 그 그릇에 담긴 것은 절망만이 아니다. 삶의 바닥에서도 사람은 누군가를 발견하고, 무언가를 나누며, 다시 움직일 동력을 얻는다. 영화 <드라이브>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누리는 화려한 드라이브 뒤에, 저토록 고단하지만 따뜻한 드라이브가 계속되고 있음을 알고 있느냐고. 감독은 거친 카메라 워킹과 씁쓸한 결말을 통해, 오히려 삶의 가장 낮은 곳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생의 의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해 낸다.영화 <드라이브>는 대단한 사건이나 반전을 다루지 않는다. 그저 길 위를 구르는 바퀴처럼 묵묵히 두 사람의 시간을 따라갈 뿐이다. 하지만 그 끝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과연 무엇이 인간을 살게 하는가?" 가족이 없어도, 번듯한 집이 없어도, 누군가와 함께 곰탕 한 그릇을 나누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이동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지속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영화는 말해준다.영화 <드라이브>는 화려한 도심의 네온사인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따뜻하고도 서늘한 헌사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의 마음속에 남는 것은 달콤한 위로가 아니라,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피어오른 곰탕의 김 같은, 작지만,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일 것이다.5) 가장 느린 오토바이가 실어 나르는,가장 무거운 고독과 가장 따뜻한 곰탕 한 그릇의 기록가족이 없어도, 번듯한 집이 없어도, 누군가와 함께 곰탕 한 그릇을 나누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이동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지속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영화는 말해준다.<드라이브>는 화려한 도심의 네온사인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따뜻하고도 서늘한 헌사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의 마음속에 남는 것은 달콤한 위로가 아니라,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피어오른 곰탕의 김 같은, 작지만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일 것이다.정제된 미장센보다는 현장감이 살아있는 거친 화면을 선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통의 소음,오토바이 엔진 소리, 차가운 겨울바람 소리가 영화의 배경음악을 대신하며 극의 사실성을 높인다.<드라이브> 영화는 억지 감동을 쥐어짜지 않는다. 오히려 ‘우울하고 씁쓸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관객은 이들의 행복을 보며 미소 짓기보다, 이들이 처한 현실의 무게를 느끼며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감독이 의도한 ‘약간의 위로’가 가진 힘이다.또한 이 영화는 감동의 정점보다는 고통의 일상성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감독 이동현은 자극적인 서사 대신, 거친 엔진 소리와 폐지가 쌓여가는 손수레의 무게감을 통해 인간 소외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드라이브>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길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여전히 우리는 함께 달릴 수 있다"라는 사실을 가장 투박한 방식으로 속삭이는 작품으로 여러분에게서 보시길 추천한다.영화감독 피디 작가 하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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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6 국내영화
김치 한 포기에 담긴 며느리들의 동상이몽
김치 한 포기에 담긴 며느리들의 동상이몽<셋,둘 하나,김치>영화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넘어,한국 사회의 시댁 문화를 조명하며 세 며느리의 내면 풍경을 그려낸다.감독은‘겉과 속이 다른’시댁의 며느리들을 통해 가족 관계 속에서의 갈등과 화해,그리고 어쩔 수 없는 연대감을 유머와 공감을 담아 풀어낸다.영화는 단순히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버무리는 과정에 그치지 않고, ‘시댁’이라는 한국 사회 특유의 가족 구조를 정교하게 탐구한다.특히 세 명의 며느리가 중심에 선 이야기는 이 과정에서 터져 나오는 갈등과 눈치싸움을 통해 복잡한 인간관계를 드러낸다.영화의 시작은 남편의 불륜으로 합의 이혼을 하기로 한 셋째 며느리.시댁 식구들에게 이혼 소식을 알리기 전,나이 어린 첫째 형님과 잘난체 하는 둘째 형님들과 마지막 김장에 참여한다.세 며느리는‘시댁’이라는 울타리 안에 서로를‘이해’할 수 있을까?김장 김치를 사수하기 위한 세 며느리의 치열한 심리 눈치싸움이 시작된다.<셋,둘 하나,김치>영화의 핵심은 김장을 통해 세 며느리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풀어낸 점에 있다.배추를 절이는 과정은 이들의 갈등을 상징한다.누군가는 너무 세게 누르고,누군가는 느긋하게 다루며 의견 충돌이 발생한다.이 장면은 표면적으로는 사소하지만,누가 시댁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암묵적인 권력 다툼을 보여준다.시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며느리들이 겪는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도,무겁지 않게 풀어낸다.셋째 며느리가 이혼 사실을 숨긴 채 김장에 임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짠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그녀의 눈빛에는 말하지 못한 비밀과 시댁에서 느낀 소외감이 담겨 있다.영화는 관객에게 말한다.시댁이라는 울타리는 때로는 억압적이지만,그 안에서 생겨나는 관계 역시 복잡하고 다층적이며,어쩌면‘김치’처럼 시간이 지나야 제맛이 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이 영화에 나오는 세 며느리는 시댁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어린 첫째 며느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애써 의젓한 척하지만,서툰 행동에서 그녀의 불안함이 엿보인다.반면 둘째 며느리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시댁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하지만,이는 인정받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이 반영된 모습이다.셋째 며느리는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을 앞두고 있지만,시댁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은 채 내적 갈등 속에서 마지막 김장을 함께한다.이 세 사람은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버무리는 동안 끊임없이 부딪히고,때로는 침묵 속에서 미묘한 감정을 나눈다.김장이라는 과정은 그들의 갈등이 폭발할 수 있는 무대가 되는 동시에,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시댁’이라는 무대,며느리라는 역할을 영화는 김장을 준비하는 날을 배경으로,각기 다른 세 며느리의 개성과 갈등을 흥미롭게 그린다.시댁만 오면 겉과 속이 달라지는 세 며느리의 모습은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축약한다.서로 다른 재료들이 하나의 양념을 만나 숙성을 거쳐 맛있는 김치가 되기까지.각각 다른 맘으로 다른 생각으로 같이,김장을 하는 세 며느리의 모습은 어딘가 짠하기도 하고 공감 가기도 한다.서로 다른 세 사람이 시댁이라는‘울타리’안에서 하나의‘맛있는 김치’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은 이들의 관계와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김장의 준비 과정에서 각자의 방식과 의견이 충돌하며,김치를 버무리는 동안에도 신경전은 계속된다.영화는 단순히 갈등만을 부각하지 않는다.김치를 함께 담그는 동안 세 사람은 서로의 속사정을 어렴풋이 느끼고,갈등 너머의 공감대를 찾으려 애쓴다.영화의 핵심은 김장을 통해 세 며느리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풀어낸 점에 있다.배추를 절이는 과정은 이들의 갈등을 상징한다.누군가는 너무 세게 누르고,누군가는 느긋하게 다루며 의견 충돌이 발생한다.이 장면은 표면적으로는 사소하지만,누가 시댁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암묵적인 권력 다툼을 보여준다.하지만 양념을 버무리는 단계에서는 이들이 점차 같은 목표를 위해 협력하게 된다.각자 다른 재료들이 하나의 양념을 만나 조화를 이루듯,며느리들 역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기 시작한다.영화는 이 과정을 단순히 화해의 과정으로 그리기보다,숙성이라는 기다림과 시간이 필요한 단계로 묘사한다.김장은 사소한 듯 보이는 가족의 일상적 사건을 통해 보편적인 갈등과 공감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시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세 며느리의 심리적 눈치싸움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씁쓸함을 남기기도 한다.이 영화는 단순히 며느리들의 갈등을 비판하기보다,결국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이해와 화합의 메시지를 담아낸다.<셋,둘 하나,김치>단순히 먹거리를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숙성되어 가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영화가 끝난 후,관객들은 자신만의‘김치’를 담그는 삶의 방식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셋,둘 하나,김치>영화는단순한 가족 영화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김치를 담그는 며느리들의 모습은 단순한 가사 노동을 넘어,사회 속에서 여성이 처한 복잡한 역할과 감정을 투영한다.서로 다른 삶의 배경과 성격을 가진 며느리들이 부딪히고,때로는 공감하며 숙성되는 과정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본질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영화는 관객들에게 한국 사회의 가족 구조와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얽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또한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깊고 진한 맛을 내는 김치처럼,인간관계 역시 성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따뜻하게 전한다.하얀 그림자 영화감독 작가 피디 정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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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5 국내영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이들의 불안과 고독의 이방인 피난처
영화 이불 안 낭떠러지는 가족 간의 갈등과 개인의 내면적 혼란을 아이의 시각에서 심도 있게 조명합니다.주인공 김박라엘의 여름방학은 무속인이 된 엄마와 독실한 기독교인인 할머니 사이에서 혼란에 휩싸이며 전개된다.어느날 갑작스럽게 무속인의 길을 걷게 된 엄마와 독실한 기독교인인 할머니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라엘(11세)은 혼란스러운 여름방학이 끝난 날 꾀병을 부려 학교에 결석한다.거실에서 들리는 할머니의 예배 소리를 들으며 라엘은 엄마가 떠나던 날을 다시 떠올린다.이 영화 작품의 중심은‘이불 안’이라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다가오는 불안과 균형을 잡지 못한 위태로움입니다.이 공간은 어린 소녀 라엘의 개인적 피난처이자 가장 내밀한 감정을 탐구하는 장으로 설정됩니다.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개인이 외부 갈등 속에서 느끼는 혼란에 피해서 이불 속으로 피신하는 복잡한 감정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라엘의 혼란은 부모 세대의 선택과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더 심화하며,이는 어린 라엘이 성장 과정에서 겪게 되는 소속감과 안정감을 갈구하는 인간 본능을 일깨웁니다.이불 안 낭떠러지는 외부의 갈등이 아이의 내면을 어떠한 방식으로 형성하고 성장시키는지를 세밀히 보여주는 작품이다.작품의 제목<이불 안 낭떠러지>는 우리가 아는 가장 편안해야 할 공간에서조차 숨이 막혀 오는,서서히 느껴지는 불안과 위태로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아이의 시점에서 겪는 내면의 혼란을 중심으로,개인이 외부 갈등 속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과 고독을 그려내는 영화이다. "이불 안"이라는 공간은 주인공 라엘의 개인적 피난처이자,동시에 불안과 혼란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소로 이곳에서 라엘은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고,성장해 나간다.이방인의 시기를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의지하고 소속될 곳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어디도 선택할 수 없이 거짓말처럼,재난처럼,숙제처럼 다가온 상황이 무딘 일상으로 자리 잡기까지 저마다 겪어내야 했을 혼란함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그 모든 혼돈에 뒤늦게라도 애정과 응원의 시선을 보낸다,영화 속 이불 안’이라는 공간의 상징성은 이 공간이 라엘의 피난처이자 불안의 근원으로 작용하며,개인의 내적 혼란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종교적,가족적 갈등의 여파:라엘을 둘러싼 가족 내 갈등이 어떻게 주인공의 정체성과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공간을 감독은 섬세한 연출과 감정 표현으로 파편적인 순간과 사건들이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지,그리고 감독의 독특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이방인으로서의 성장 이야기를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소속되지 못함’의 고독과 불안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메시지를 표현한다,이 영화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이방인’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에 대한 고찰을 통해 관객들에게 소속되지 못한 불안 속에서도 희망과 응원의 시선을 던집니다.이것은 인간이 무력함 속에서 감정의 한계를 마주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성장의 과정에 대한 은유적 표현입니다.감독은 개인의 내면과 외부 세계가 연결되는 순간들을 포착함으로써 이를 큰 이야기의 흐름으로 엮어내는 데 성공했다.<감독의 작품 세계>감독은 이 영화에서 감정의 파편과 조각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는 창작의 과정을 보여줍니다.세상의 단편적인 순간들이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하나의 흐름과 깊이를 형성하며 보이지 않던 것들을 드러냅니다.감독의 창작 방식은 감정과 사건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며 그 과정에서 예술적 기쁨을 느낍니다.어떤 사물에 무언가를 계속 응시하다 보면 그것이 하나로 모여지는 것이 아니라 팽창하여 흩어지는 순간이 옵니다.그 조각들을 모아 새로운 이야기로 엮어내고,이를 영화로 만들어가는 작업을 합니다.세상의 수많은 단편적인 순간과 감정들이 서로 이어질 때,비로소 하나의 흐름을 이루며 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됩니다.그렇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고,산만했던 조각들이 의미를 가지는 과정에서 창작의 기쁨을 느낍니다.그렇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고,산만했던 조각들이 의미를 가지는 과정에서 창작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감독이 이 영화에서 집중하는 주제는 감정의 팽창과 산만함을 어떻게 조율하여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이불 안 낭떠러지는 이러한 창작적 실험과 인간적 감정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며,그 과정에서 감독이 느낀 애정과 응원은 영화 전반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영화 이불 안 낭떠러지는‘이방인’으로 느껴지는 순간들,그리고 그로 인한 고독과 불안을 아이의 관점에서 담아내고 있습니다.감독은 이 작품의 제목처럼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에서도 불안함을 느끼는 인간 본능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외부 갈등이 한 개인의 내면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섬세히 그려내고자 했습니다.이는 단순한 갈등의 묘사가 아니라,개인이 그 안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과 성장 과정을 탐구하는 창작적 접근방법에 환호를 보낸다.감독은 앞으로도 감정과 감정의 조각들을 연결하는 작업을 지속하며,단편적 순간들이 모여 큰 흐름을 이루는 과정을 통해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전달할 계획입니다.이불 안 낭떠러지는 이러한 철학적 접근과 창작 실험의 산물로,감독이 중시하는‘파편에서 하나로’라는 작업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그는 인간 본성의 복잡성을 깊이 탐구하며 앞으로도 잔잔하지만,강렬한 감정의 순간들을 포착하는 영화를 만들어갈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감독의 연출은 상황의 복잡성과 개인의 고독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때의 감정적인 결과를 보여주며,관객들에게 그 안의 애정과 응원의 시선을 던집니다.또한,아이들이 느끼는 혼란 속에서 안정감을 찾는 노력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보편적 경험으로 작품 안에서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이 영화는 인간 본능인‘소속’에 대한 갈구를 통찰하는 동시에,관객에게 스스로 내면과 마주할 용기를 제시하는 작품입니다.깊은 감정의 파도를 헤쳐 나가는 성장 스토리를 통해 누구나 이방인처럼 느끼는 순간에도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영감을 제공하는 이 영화의 내면을 함께 만나 보시죠.작가감독피디 하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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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5 애니메이션
인형은 울지 않는다.
인형은 울지 않는다.다산을 상징하는 숭배의 대상이었던 구석기 시대의 유물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가장 오래된 인형으로 여겨진다.오래전부터 인형을 만들어 왔던 인간은 끊임없이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으려 했으며 살아있는 인형을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계몽 시대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인류에겐 인간과 외모가 비슷하고 인간처럼 움직이고 말하는 인형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아직 없다.인간의 존재감을 재현하기 위해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지금보다 더 깊어야 한다.우리를 편하게 해주고,신뢰를 주는 신호와 미세한 움직임을 알아야 한다.인간 창조는 신의 영역이다.살아있는 인형은 신의 영역을 끊임없이 넘본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인형을 살아있게 만들어 인간의 수준에 근접게 하려는 것.완전한 인형의 조건은 역설적으로 인형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인형이 아닌 인형,살아있는 인형을 추구한 인간 욕망의 근원은 무엇일까.또한,인형이 완벽하게 살아있는 상황이 도래하면,그때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근거는 무엇일까.이 영화를 보시면 알 수 있다.한 남자가 토끼 인형을 다듬고 있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한다.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에 관여한다.남자는 밤 동안 토기 인형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잠들면,여자가 들어와 낮 동안 부차적인 부분의 제작과 수정을 맡는다.둘의 일은 일상처럼 반복된다.그러자 옷장 안에서 자기와 똑같은 사람 인형을 발견하고는 그녀를 분장하고 옷을 입히고,눈동자를 그려주고,손에 매니큐어도 칠해주고,살아있게 만든다.둘 이 같이 춤을 취하면서 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알람이 울리고 여자는 잠에서 깨면 남자가 서서 본다.둘은 같이 일도 하고 식사도 사랑도 나눈다.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 인형.여자의 눈빛이 남자에게 몰입하지 않고 그 인형에게 집중한다.인형을 따라 옷장으로 들어가고,거기에는 이미 망가진 인형들의 모습들이 보인다.놀라는 여자,옷장을 나오다가 자신의 다리가 부러지고,팔이 부러지면서 갑자기 화면이 멈추며 이 영화 최대의 반전이 선보인다..감독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사용하여 정성껏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두 명의 예술가,한 남자와 한 여자의 초상화가 절정에 이르러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영화 속 주인공으로 영화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사랑,배신,분노,욕망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다른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고 있다.'복제품'과'유령'을 조합한 말로"죽음이 모조품에 내재하는 것처럼 들린다.".오래전에 영화사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블레이드 러너'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존재론의 기반을 뒤흔든다.공포 영화‘어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영화의 첫 장면에서 보이는 토끼 인형들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녀가 이미 인간을 닮은 여러 복제품 중 하나라는 의미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인간을 가장 많이 닮은 살아있는 인형 중에는 심지어 자신이 인형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가 있다.영화 속 인공 생명 창조에 관한 모습은'마술의 신비,꿈의 기계'장에서 다뤄진다.창조성의 화신 에디슨이 살아있는 인형을 만들려고 시도했다는 이야기는 신과 경쟁하려는 인간 욕망에 관한 단순한 우화에 머물까. '블레이드 러너'의 안드로이드가 제기하는 존재론의 혼동은 이제 현실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유전공학의 발달로 이제는 인간이 실제로 신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보면 더 흥미로운 이 영화 정주행을 추천한다.하얀 그림자 영화작가감독 정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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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5 애니메이션
단절 속에서 만나는 나와 너의 좌표를 찾는 성장의 여정
담담해서 더 아픈, 반복되는 폭력의 일상 #PrincessePrincesse, 불어로 '공주'라는 제목에서 으레 기대되는 미녀와 화려한 드레스, 대리석 궁전은 이 영화에 없다. 회칠한 벽과 위태로운 선율로 기억되는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면, 허름한 오두막이 나타나고 한쪽 얼굴이 흉터로 일그러진 여인이 정체도 알 수 없는 음식을 요리할 뿐.두 명분의 그릇을 세팅하고 홀로 창밖을 보는 여인의 무표정한 얼굴과 창밖에서 그녀를 훔쳐보는 시선이 교차되며 묘하게 긴장되던 분위기는 공포의 실체(늑대)가 나타난 순간 깨진다.여기까지 봤다면 누구든 여인이 그녀를 다치게 한 바로 그 늑대의 감시 탓에 오두막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유추할 수 있을 터. 우악스럽게 짖어대는 늑대를 피해 침대 구석으로 옮겨간 여인이 보는 책 제목이 바로 Princesse다.갑갑한 현실의 돌파구로 Princesse 소설책 속 해피엔딩을 꿈꾸는 그녀지만, 애석하게도 오두막을 찾는 건 멋진 사내인 척 눈속임한 늑대다. 둘 사이 무미건조한 식사시간이 지나고 'DOG'와 'GOD'라는 글씨가 찍힌 술병을 사내가 연신 비워내면 여인은 사내가 가져온 토끼사체를 요리하다 원치 않는 관계를 맺는다.실사 영화나 색채가 있는 애니메이션이었다면 몹시 폭력적으로 비쳤을 장면은 흑백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영화의 특성상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표정 변화나 대사 없이 인물의 행동만 비춰지는 데다 흑백 영화라서 '달아날 수 없어 포기해버린, 반복되는 폭력의 일상'을 살아가는 여인의 내면이 더욱더 날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특히 동의하지 않은 관계의 밤이 지나고 홀로 눈을 뜬 여인이 익숙한 듯 요리하고 청소하는 장면, 늑대가 짖어대는 창가에 체념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Princesse 소설책을 꽉 안고 있는 모습에서 무기력하지만 실낱같은 희망 만은 놓지 못하는 마음이 오롯이 보여진다. 식탁에 앉아 소설의 결말 Happy Forever 까지 보고 첫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읽는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한데, 우리를 또 한번 숨 막히게 하는 건 사내가 데려온 또 다른 여자다.언제나처럼 술에 취한 사내의 욕정이 펼쳐지는 동안 죽은 건지 산 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식탁에 방치되었던 여자는 정신을 잃은 상태로 사내에게 범해지고, 폭압의 밤이 지난 뒤 오두막에 남은 두 여인은 몹시도 닮은 서로를 바라본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함께 차를 마시고 Princesse 소설을 함께 읽던 평온한 일상은 사내의 방문으로 다시 깨어지지만, 이제 두 여인은 술에 취해 사내가 일방적으로 범하는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두 여인은 어떤 결말을 만나게 될까. 술에 취하는 순간 DOG(개)가 되어 오두막의 GOD(신)이 된 양 여인들을 폭압하고 제멋대로 유린하는 사내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일상화된 폭력과 당하는 이의 감정선을 담담하게 그려 더 아릿한 영화 Princesse, 결말은 이쯤에서 아껴두겠다.몇 마디 말로서 결말을 전하기엔 너무도 무거운 주제지만, 한 번의 감상만으로 너무도 담담하고 저릿하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전해질 터. 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무기력한 폭압의 감옥 속으로 여러분을 안내하는 이유다.-갑갑하고 먹먹한 감정으로 보다 보니 더 빠르게 흘러가 버린 장면들을 몇 번이고 되짚어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러닝타임은 11분이지만 몇 번이고 돌려보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날 테니 마음과 시간이 여유로울 때 한번 찬찬히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리뷰 : florence 박정현 gukja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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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5 국내영화
오늘 난 죽기로 결심했다, #Precut_girl
오늘 난 죽기로 결심했다, #Precut_girl어둑한 방 구석에서 맞이하는 매일이 형벌 같을 때,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나를 용납할 수 없을 때,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 어떤 사람은 스스로 죽기를 선택한다. 목숨을 끊는 것에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저 의미를 잃어버린 삶보다 미지의 죽음이 아늑하게 느껴지는 어느 날, 어느 때가 왔을 뿐.영화의 주인공 나미 역시 마찬가지다. 단 한 번도 행복 하질 못해서, 이민으로 일본을 떠나온 후에도 달라지지 않는 삶이 지긋 해진 어느 날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내던진다. 어쩌면 깔끔하게 끝났을 나미의 생, 집 근처 쓰레기 하치장에서 다시 눈을 뜨면서 묘하게 뒤틀린다.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그녀를 단단히 포장하고 있는 비닐을 찢고 첫 숨을 내뱉는 순간, 나미는 다시 태어난다.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어서 일까,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저마다 삶의 이유나 목표 찾기에 중독되는 것처럼 다시 태어난 나미는 살아야 느낄 수 있는 단 하나의 쾌락에 중독된다. 칼로 스스로를 찔러 죽음에 이르는 찰나, 찾아오는 오르가즘에 하루하루 버텨가지만 짜릿한 감각이 언제나 그렇듯 쉬이 무료해진다.이제 나미는 어떻게 해야 할까.죽고 싶은데 죽을 수 없고, 죽지 못해 찾아오는 허망한 좌절을 버티며 살아가려면 꼭 필요한 쾌락마저 그 힘을 잃은 상황에서 가장 쉬운 선택은 무엇일까. 혼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가 폭발할 때 당신이 누굴 먼저 탓하게 되는지 생각하면 쉽다.물론 가족, 가족이 없다면 가장 가까운 연인이나 친구. 본디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 만을 탓해서는 해소할 수 없는 것들일수록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이들을 탓하며 그 감정 상태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나미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외톨이는 무작정 거리로 나가 끌리는 맥스를 택하고는 그와 친구가 되었다가 곧 연인의 관계로 진입한다.이쯤에서 우리가 기대하게 되는 건 사랑으로 자살 충동에서 벗어나게 되는 나미나 해피엔딩 정도겠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아서" 더 흥미롭다. 맥스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미의 목표는 하나 여 서다. 말랑말랑한 감정의 교류보다 더 강렬한 쾌락을 찾는 나미는 맥스와 처음 만난 날 그의 앞에 칼을 내민다."나를 찔러!"원나잇을 기대했던 맥스는 도망치려 하지만, '잠겨버린 방문'이라는 덫에 걸려 옴싹달싹하지 못한다. '칼에 찔려 죽어야만 하는 여자와 칼로 그녀를 죽여야만 하는 남자'라는 이해 불가한 관계가 세팅 되고, 둘의 관계가 삐걱대며 이어질수록 우리는 집중하며 기대하게 된다. '또, 다음이 있을까', '진짜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은 올까'로 생각을 이어가며 둘 사이의 무언가를 갈구하게 되는 거다.이는 나미에게도 마찬가지다. 영화 말미 그녀는 맥스에게 "What do you see?"라고 반복해서 물으며 그도 그녀와 같은 것을 보는지,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지 대답을 갈구하는데 단순히 죽음에의 쾌락을 느끼게 해줄 엑스트라로만 생각했던 맥스가 그녀 안에서 더 큰 존재가 되었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을 터. 처음에는 이해할 수도, 알고 싶지도 않던 나미가 서서히 우리 안으로 파고들어 종국에는 마음마저 요동치게 하지만, 직접 보기 전까지는 짐작할 수조차 없는 그런 영화다.-죽지 못해 사는 여자, 매일매일 찰나의 쾌락만 찾는 여자라는 단순한 표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나미. 마지막까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해도, 그녀를 이해하며 펑펑 울어도, 이유를 알 수 없이 코끝이 찡해도 좋습니다. 이 작품의 매력이 바로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달리 생각하게 되지만 묘하게 울리는 감정의 파동 만은 살아 있다는 거니까요. 재생 버튼은 가볍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리뷰 : florence 박정현 gukja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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